
현대 사회는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과거에 비해 눈부신 발전을 이뤄왔다. 사회 각 분야에서 물질이 풍성해지고 이로 인해 우리들의 생활도 편리하고 윤택해졌다. 그러나 자연환경의 파괴, 물질 만능주의, 생명 경시, 도덕과 규범의 상실 등 문명의 발달로 인한 역기능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역기능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도덕과 윤리가 강조되고 있다. 윤리란 인간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도리나 규범을 말한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으며, 사회에 속해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게 된다. 이처럼 사회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곳이다. 서로 어울려 사는 동안, 옳고 그름을 구분하여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윤리의 목적이다.
궁극의 목적은 부처 되는 것
업설과 계율사상에 잘 ‘반영’
불교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가르침을 펴고 있다. 불교의 윤리는 개인이 사회인으로서 내면적인 지혜의 수련과 외부적 자비의 활동을 일치시키는 데 있다.
지혜의 수련이란 선과 악을 판별해 악행을 금하고 선행을 실현하는 인간의 도리를 말한다. 자비의 활동은 인간들을 위한 자비보살행으로서 사회적 관계를 의미한다. 불교에서 강조하는 윤리의 궁극적 목적은 성불을 이루기 위한 수행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불교의 윤리사상은 업설(業說)과 계율사상에 잘 나타나 있다. 업설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가장 포괄적인 개념으로 불교 윤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 업(業)은 인간의 의지작용과 행위를 말한다. 업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과보가 따른다. ‘콩 심은 데 콩난다’는 말처럼 선업에는 즐거운 과보가 따르고 악업에는 괴로운 과보가 따르는 법이다.
불교에서는 ‘삼세 업보설’을 통해 업과 과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삼세란 전생과 현생, 내생의 세 가지 생애를 뜻한다. 그래서 전생에 지은 업에 대한 과보를 현생에서 받게 되며, 현생에서 업을 지으면 내생에서 그에 대한 과보를 받는다. 부처님도 “만일 일부러 업을 짓는다면 반드시 그 과보를 받되, 현세에 받을 수도 있고 내세에 받을 수도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이 악업을 짓지 않도록 불자들이 지켜야 할 생활규범의 원칙으로 다음과 같이 규칙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몸과 관련된 규칙으로 함부로 목숨을 죽이지 말고 살려줄 것, 남에게 베풀 것, 다른 사람과 삿된 관계를 갖지 말고 정숙한 생활을 할 것을 강조하셨다. 다음은 말과 관련된 규칙으로 정직한 말, 부드러운, 바른말, 화합을 이끄는 말을 쓸 것을 강조하셨다. 언어생활은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사소한 말 한 마디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 신중히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생각과 관련된 규칙들이다. 우리들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속에서 살아간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계율, 선정, 지혜의 삼학을 닦아 나가는 것뿐이다. 이것은 수행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