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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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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금용사 날짜 : 2016-06-01 (수) 00:31
조회 : 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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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빈두설경(賓頭說經)에서 다음과 같은 설화를 이야기하셨다.「옛날 어떤 사람이 큰 광야에 나갔다가 미친 코끼리 한 마리를 만났다. 그는 크게 놀라 뒤도 돌아볼 겨를 없이 도망쳐 가다가 들 한복판 옛 우물터에 뻗어 내려간 등나무 넝쿨을 붙잡고 들어가 간신히 몸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속에는 또 다른 적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물 네 구석에서는 네 마리의 독사가 혀를 널름거리고 우물 한복판에서는 무서운 독룡이 독기를 내뿜고 있었다. 위에서는 미친 코끼리가 발을 동동 구르고 밑에서는 용과 뱀이 함께 혀를 널름거리니 오도 가도 못한 행인은 오직 하나의 생명선이라 할 수 있는 그 등나무 넝쿨에 몸을 꼭 붙이고 있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이상히 여긴 행인은 고개를 빼들고 그 소리를 경청했다.그러나 그것은 결코 그를 구하기 위해서 오는 대상들의 말발굽 소리가 아니라 자기가 잡고 있는 등나무 넝쿨을 흰 쥐와 검정 쥐가 서로 번갈아 가며 쏠고 있는 소리였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사나이였다.그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하늘가에선 몇 마리의 꿀벌들이 집을 짓느라 날고 있었다. 앉고 날 때마다 떨어지는 꿀방울 너덧개, 그것이 입에 닿았을 때 그는 그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그것에만 도취되었다.그러는 동안 대지엔 난데없는 불이 일어나 태울 만한 모든 것은 다 태워 버렸다.」 이것은 비유다. 넓은 광야는 무명장야(無明長夜), 어떤 사람은 생존인간, 코끼리는 무상, 옛 우물은 생사, 나무뿌리는 명줄, 횐 쥐와 검정 쥐는 낮과 밤, 해와 달, 나무뿌리를 쏘는 것은 염념생멸. 네 구석의 독사는 4대색신, 독룡은 죽음, 벌은 삿된 생각, 너덧 방울의 꿀은 5욕, 불은 늙고 병드는 것에 각각 비유된 것이다. 끝없는 무명장야의 이 세상에 태어나 무상신속의 불안 속에 위협을 당해 가면서 수파후랑(隨波遂浪)하는 인생, 이 인생을 부처님은 이 설화에 비유했다.인간은 무명의 병에 걸려, 밤낮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여 있다. 하지만 그 인식도 잠시뿐, 벌꿀과 같은 오욕(五慾)에 이끌려 그 모든 상황을 잊고 사는 게 인간이다. 불교의 시작이 ‘삶은 괴로움이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면, 불교의 끝은 중도를 깨침으로서 완성된다.그리고 이 중도의 길에 팔정도가 있다. 즉 바른 견해(正見)로부터 시작해서 바른 삼매(正定)로 끝나는 여덟 가지 길이다. 그러면, 어떤 것이 바른 견해일까.“비구들이여, 바른 견해란 무엇인가. ‘괴로움에 대해서 아는 것(고성제), 괴로움의 발생에 대해서 아는 것(집성제), 괴로움의 소멸에 대해서 아는 것(멸성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서 아는 것(도성제)을 바른 견해라고 한다.”이처럼 팔정도의 첫 가르침은 사성제에 대한 바른 견해로 시작하고 있다. 이미 팔정도가 사성제에 포함되어 있음에도 팔정도에서 사성제를 다시 거론한 것은 괴로움에 대한 철저한 재인식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괴로움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야 말로, 벗어나야만 하는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괴롭다고 하는 괴로움은 대체로 육체적 심리적 아픔을 의미한다.하지만 부처님이 고성제를 통해서 말한 괴로움은 더 근본적인 의미이다. 즉 모든 존재는 바뀌고 변해간다는 무상(無常)의 괴로움이다. 만일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고,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면, 괴로움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만 자신과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면, 그러한 믿음이 곧 헛된 망상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무상하기(諸行無常) 때문에 괴롭다는 것(一切皆苦)은 보편적 진리이다. 이러한 진리에 대한 바른 인식이 없다면, 바른 실천도 없다.그러면 무상이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상하니까 무상한 것일까. 만일 이것에 대한 이유가 없다면, 괴로움을 벗어날 길도 없다. 만일 부처님의 가르침이 여기서 끝났다면, 무상하다는 것은 모든 존재가 인과적 관계인 연기적 존재라는 가르침이 없었다면, 불교 역시 다른 종교와 다를 바가 없다. 그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믿어라는 맹신의 구호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모든 존재는 아무런 이유 없이 무상한 것이 아니다. 연기(緣起)하기 때문에 무상하다.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도 일어나듯이, 어떤 것도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이지 않다. 우리는 무상한 것을 무상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영원한 자아나 불변하는 어떤 존재가 없음에도 그러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러길 바라는 집착(집성제)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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